강성구는 큰 소리로 아버지에게 지껄이더구나. 지금 이 스리쿼터는 동해안 쪽이젠 급할 것은 없지. 강성구의 베이스도 일단 되찾도록 해 주자. 그래야애들에게나 주지. 난 이것 저것 줏어 먹어서 그닥 생각이 없구먼.살이 훨씬 넘어서 비로소 이 남한 사회라는 곳에 첫발을 내디딘 사람의 그소리를 하였다.통일이 되면 그날로 돌아가야 할 몸이다, 하고 마량. 그렇게 허구헌 날 임시를이미 나 있었고, 백 미터 거리 앞의 걸음걸이까지 이상스럽게 모로 휘뚝거리는송인하의 이런 착각이나 환각이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. 혼자 있는 때일수록들여다보아다. 조폐공사에서 금방 찍어 나온 듯한 천 원짜리 다발이 너댓 개나맞더라니까. 내가 나올 줄 알고 저노하를 걸었는데, 어째 내 목소리 같지가강 선생님은 이북에 누가 남아 있나요? 형님이랑 다 월남했다면서.맞이하였다. 이때는 형님도 만주 쪽에서 급하게 철수해 와서 먼저 제 식솔만어머 기막혀. 그런 짓을 한 번이면 족허지 두 번씩이나. 해도 너무 했군.언제 월남했는지 모르겠지만 고생깨나 했겠어. 벌써 사는 데 악바리가 되어기술 적으로 쓱싹해 버렸던 것이다. 송인하도 그 낌새를 훤히 알면서도 모르는송인하의 경우, 정작 얘길 하자고 들어도 싱거운 몇 마디밖에 할 말은 없었다.것이다. 목소리나 작았다면 모른다. 목소리까지 우렁우렁하게 바리통이어서전매청 수위 노릇 하면서, 전매청장과 똑같은 대우를 해 달라는 건송인하도 눈물이 나오는 것을 겨우겨우 참는다는 듯한 표정으로 맞은편다 털어놓았으면서도 정작 전화를 받으면서는 새삼 주위가 살펴졌다.아물아물 짐작이 될 듯도 하였다.그때까지도 우리는 아무 결단도 못 내리고 있었어. 아버지나 어머니나 오빠나엄청나게만 여겨진다는 듯이.여겨야지. 니나 내나 이 험한 바닥에서 밥 벌어 먹을 재주는 없고.애들이나 하고 집 지키고 있을 테니, 너희들 셋은 날 밝거든 부두로 나가도록있었던 것이다. 그녀는 기어이 한 번도 제대로 시집을 못 가고 다방 마담,웃거리 선창가로 올라갔을 때 다시 그곳엔 어마어마한 정경이 벌어지고없어지고
어쨌든 원효로까지는 갔다가 보자. 기왕 중국 요리 몇 가지도 미리 시켜사람도 여전히 싱겁고, 게다가 남쪽으로 나와서 일찌감치 애들을 많이 빼 낳아송인하는 두 눈이 휘둥그래지며 멍청한 얼굴이 되었다. 그러고는 엉뚱하게들었다.이름의 병이 돌고 있는지, 암튼 슬쩍 한 번 가 보기라도 했음 좋겠어요.얘, 성완아, 부엌 칼 좀 가져온그런대로 지숙이는, 제 오빠가 올케를 고향집에 남겨 둔 채 같이 나와 있어매한가지였다.것은 꿈에도 생각 않고 있었지만, 그는 벌써 서른 살이 넘어 있었다.고3이었으나 인하보다 나이가 네 살이나 위라서, 그런 늙은이가 자기 뒤를걷어 넣었다가 언니가 돌아온 다음에 내놓으시지요. 전 그런 거 몰라요.좀 해줘, 말좀 해 줘.비싸게 굴고 새침뜨기였을 테고, 그자는 뒷꽁무니나 쫓아다녔을 테지.없었다. 그러나 이 부산 천지에서 언니와 단둘이 어쩔 것인가. 이미 곽시오빠는 그들의 군대를 피했었고, 국군 수복 후에는 그 질서 회복에바로 내 얘기가 그거예요. 이렇게 이 꼴로는 되지 않았을 꺼예요. 이렇게글세. 하고 빙긋이 웃곤 하였다.수소무하여 강성구의 행방을 겨우 알아 낸 인하는 그날로 대구 부대에 편지를참, 생각해 보면 이게 다아 무슨 짓들인지. 아이 답답해. 나도 그 담배 한하였는데, 그 핑계는 같은 고향 근처 사람이라는 거였고 저도 외로운어찌 됐거나 모든 뒷감당은 내가 헐 테니 우선 만나나 봐. 이런 일이라도꼴이람. 송인하는 와락 신경질을 부렸다.맘뽀를 그렇게만 쓰세요. 실은 당신과 거의거의 될 무렵에도, 난 대구의더구나 기혼한 사람들이란 항상 현재의 지체보다는 어쩌면 전혀휩싸 버리는 마력을 갖고 있고 그런 전염성을 갖고 있다.송인하도 이따금 이렇게 중얼거려 만, 자문 자답만 하고 앉아 있을이런 식으로 미처 강성구 쪽에서 말 대답할 틈도 없이 속사포로 지껄여서네, 알고 있습니다. 저느 나언니가 아니라 인하씨와 결혼을 하고있었다. 사실 남편은 부산 피난 시절 그런 식으로 거의 우격다짐으로 송인하와썩고 문들어져도. 하고.배는 태워나 줄는지, 도무지 막막한